0. 구글 출신 창업자, 고대디에 회사를 팔아먹다
리(리승환): 님이 누군지, 일단 지금 뭐해서 먹고 살고 계신지에 관해 간단히 이야기해 주세요.
서(서승환): 서승환입니다. 제 스타트업을 인수합병한 고대디(GoDaddy)라는 회사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 살고 있어요.
리: 이름이 특이하네요. 고대디…
서: 그렇죠. 직역하면 “아빠 달려~”가 되겠죠.
리: 뭐하는 회사죠? 한국에서는 영 들어본 기억이 없는데…
서: 세계 최대의 도메인 등록업체로 2015년 4월 상장을 했습니다. 지금은 도메인 시장을 넘어 중소기업을 위한 통합 비즈니스 솔루션 제공을 새로운 목표로 잡고, 2년 전에 운영진을 다 갈아치웠어요. 그래서 오래된 회사인데 신기하게도 신생기업 같은 분위기가 돕니다. 다른 회사를 여럿 인수합병하고 있는 이유도 팀을 빠른 시간 안에 늘리려는 의도이고요.
리: 그럼 고대디에서는 무얼 하고 있지요?
서: SEO 제품을 총괄하고 있는데 새로운 제품이라 따라잡을 게 많아요. 회사가 여러 방면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이라 정신 없으면서도 재미있네요. 고대디와 인수합병을 결정한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였죠.
리: 어쩌다 인수합병이 됐지요. 창업자에게 큰 영광 아닌가요?
서: 영광은 영광이에요. 스타트업이 십중팔구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데 그나마 ‘엑시트’ 할 수 있다는 건 일단 표면적으로는 영광이고 성공이죠. 하지만 인수합병이 여러종류가 있는데, 저희는 인재인수(acquihire)였어요.
리: 서비스가 아니라 사람을 사는 건가요?
서: 그렇죠.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보고 사들이는 게 아니라 사람만 데려오는 식의 인수합병이죠. 표면적으로는 성공이지만 처음에 품었던 큰 꿈을 이루지 못했으니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실패인데… 사실 이것도 힘들게 얻었습니다. 저희가 마지막으로 개발한 카나리(Canary)라는 앱이 어느 정도 관심을 끌기 시작하자 저희와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회사들이 많이 생겼어요.
리: 어떤 회사들이 그렇게 달려든 겁니까!
서: 어떤 회사였는지 이름을 댈 수는 없는데 다들 알만한 대기업들이었고, 그 중에 가장 적합한 곳을 찾은 게 고대디였어요. 그때는 아직 상장 전이었고 아까 말씀 드렸듯이 많은 변화가 일고 있는 곳이어서 재미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죠. 일단 인재인수도 인수합병이니까 축하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리: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제품과 서비스는 자식과 같은데… 카나리가 사라질 것을 알고 인수합병에 동의한 것인가요?
서: 네. 스타트업을 하면서 제품을 정말 여러 번 버렸는데 그때마다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온 열정을 다해서 직접 디자인하고 코딩해서 만든 제품을 버린다는 건 정말 ‘Killing your baby’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어요.
리: 애도……
서: 그런데 역으로… 몇 번 겪으면서 배운 게 제품을 열심히 개발은 하되, 지나친 애착을 가지면 안 된다는 거였죠. 그래서 어느 정도 연습이 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아쉽긴 했지만 카나리의 사용자 수가 회사를 지속시킬 정도의 대단한 숫자까지는 미치지 못했거든요. 딱히 뾰족한 수가 없는 상태에서 고대디와 눈이 맞은 거고, 아쉽지만 엑시트를 택하기로 했어요.
리: 즉, 고대디 입장에서도 인재인수임을 애초에 분명히 한 거군요?
서: 그렇죠. ‘우린 너희들을 원해… 카나리는 필요 없어…’ 라고 했으니까요. 물론 돌려 말하긴 했지만…
리: 자… 그래서 인수액은 얼마(…)
서: 그건 안타깝게도 고대디와의 계약상 말할 수가 없습니다.
리: 그러지 말고 공개 안 할 테니 저하고만 속닥속닥…
서: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근데 보통 계약상 서로 말 못하게 하는 경우는 숫자가 자랑할 만큼 높지가 않다… 라고는 말씀드릴 수 있어요.
리: 대충 애둘러서라도 말해 봅시다.
서: 구글에 남아서 2년 일했으면 벌었을 금액보다는 많지만 그렇다고 스타트업의 성공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합니다. 물론 고대디의 스톡옵션을 받았기 때문에 향후 고대디의 주가에 따라서 그 최종 가격이 얼마인지 결정이 나겠지요.
리: 스톡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건, 몇 년간 고대디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로군요. 몇 년 간 메이나요?
서: 보통이 그렇듯 5년이에요. 1년씩 1/5지분을 받아가는 거죠. 물론 그 전에 떠나는 건 제 마음이지만… 그만큼 챙겨가는 지분은 줄어들지요.
리: 참으로 팔기 싫었을 텐데, 카나리로는 한계를 느꼈던 건가요. 아니면 또 다음 아이템을 낼 여력이 없었던 건가요?
서: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둘 다에요. 보통 이런 말은 잘 안 하는데… 그때는 솔직한 심정이 그랬어요. 2년 반동안 너무 지치고 힘든 일이 많아서, 솔직하게 공동 창업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 거죠. 물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고는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이 팀으로 지금 상황에서 계속 할 수 있을까… 결국 내린 답이 엑시트라는 기회를 굳이 저버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어요.
리: 팀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서: 아쉽지만 엑시트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었죠. 그런데 고대디에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좀 엇갈리기는 했어요. 그래서 결국 조율을 거쳐 2명은 결국 딴 길을 가기로 선택을 해버렸어요. 최종적으로 저와 처음에 같이 시작했던 공동창업자 친구만 고대디로 가고, 다른 둘은 본인의 길을 찾아 떠났어요.
1. 타이밍에 밀려 사라진 야심차게 내놓은 서비스
리: 그래도 카나리는 그럭저럭 잘 되지 않았나요?
서: 네. 정확한 사용자 수를 공개할 만큼 잘 된 건 아니지만, 일단 십만은 넘었으니까요. 그리고 모두가 기사화되기 원하는 웹진 테크크런치(TechCrunch)에도 기사가 실렸고, 심지어 인크(Inc)에 2013년 베스트 아이폰 앱 5선에 들었으니 어느 정도 관심은 받았죠. 그런데…
리: 그런데…
서: 무료 앱이 잘 돼서 돈이 되려면 몇 만… 아니, 몇십 만 정도로도 안 되죠. 어느 정도 잘 된 건 맞는데 넉넉하게 서비스를 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저희도 깨끗이 포기할 수 있었던 거죠.
리: 돈이 전혀 안 됐나요. 사용자만 있고?
서: 네. 저희는 일단 사업 모델이 사람을 모은 다음에 돈 걱정하자… 이런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모델을 썼거든요.
리: 그리고 돈이 전혀 안 됐군요.
서: 네. 저희가 상상한 모델은 선라이즈(sunrise)라고 저희보다 몇 개월 빨리 나와서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천억에 팔린 회사가 있어요. 그게 사용자 수가 많아서 그렇게 팔려간 건데… 그게 바로 저희가 원한 모델이죠. 저희보다 좀 더 빨리 시장에 나오는 바람에 그쪽으로 관심이 더 많이 쏠린 것도, 저희가 사업을 접게 된 이유였죠.
리: 몇 달 차이에 천억! ㅋㅋㅋ
서: 그러니까요. 저랑 제 공동 창업자 친구는 그냥 웃었어요. ㅋㅋㅋ
리: 선라이즈와 카나리를 제품으로 따져 비교하면 어땠나요?
서: 제품이야 뭐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죠. 그 제품도 인기가 있었고 잘 만들었지만 저희 제품이 훨씬 더 좋다고 말해주는 팬층도 있었고…
리: 그래도 솔직히 심정을 이야기하자면?
서: 제 눈에는 당연히 카나리가 좋았죠. ㅋㅋㅋ
리: ㅋㅋㅋ
서: ㅋㅋㅋ
리: 어떤 차이로 그런 격차가 발생했을까요?
서: 빨랐어요. 저희가 캘린더 앱을 구상하고 있을 때만 해도 시장에 제대로 나와있는 앱이 없었는데, 그들도 저희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제대로 된 캘린더 앱을 만들어보자… 그들이 몇 개월 더 빨랐고, 또 그만큼 관심을 더 많이 받았고… 이를 기반 삼아 계속해서 성장한 거 같아요… 뭐, 변명이에요. 솔직히 제 생각엔 그렇다고요. ㅋㅋ
리: 그 회사는 좀 사이즈가 됐나요? ㅋㅋ
서: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 저희보단 확실히 컸어요. 개발속도가 몇 배는 빨랐거든요.
2. 노력충, 구글의 엘리트 코스에 합격하다
리: 그러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질문을 해보죠. 금은동흙똥수저 중 어디 속합니까?
서: 수저요? 그게 뭐죠?
리: 집안입니다. ㅋㅋ
서: 아… 저 집안배경이요? 어… 절대로 잘사는 집안은 아닌데 그렇다고 부족해본 적은 없는 중산층입니다. 동이라고 해야 할까요?
리: 자산 10억이면 동수저가 될 수 있습니다.
서: 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금 기준이면 집값이 많이 올랐을 테니, 그 정도는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ㅋㅋ
리: 그러면 헬조선에 살기 나쁘지 않은데, 이민은 왜 간 건가요?
서: 부모님이 좀더 다른 생활패턴을 원하셨던 게 컸어요. 그리고 자녀들한테 좀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셨어요. 정확히는 영어권을…
리: 아버님께서 어떤 분이시기에 그런 열린 생각을…
서: 그러게요. 저도 참 신기해요. 한국에서는 그냥 회사 다니셨고, 지금도 회사원이에요. 뉴질랜드에 한국인이 할만한 일자리가 뭔지 잡히지 않는데…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뉴질랜드 가셔서 현지 회사에 취직을 하셨어요.
리: 무턱대고 간 건가요?
서: 네. 나름 이민 1세대치고는 대단한 일이죠
리: 초딩 때면 영어 못 해서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서: 넵. 엄청 심했습니다. ㅋㅋ
리: 설마 하나도 못 하고 간 건 아니겠죠.
서: 나름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대표로 영어 말하기 대회도 나갈 정도록 잘 나가던(?) 아이였는데, 거길 가보니 말 못하는 바보가 되어있더군요. 그래서 뭐… 그냥 친구들이랑 잘 어울려 놀려고 노력했어요. 애들하고 놀려고 축구부, 육상부, 오케스트라, 재즈 밴드… 기회 닿는대로 다 했죠.
리: 헐. 운동도 잘 하고 음악도 잘 하고…. 만능이군요.
서: 원래 서양에서는 하려고 하면 다 끼워주기는 해요. 나중에는 곧잘 했는데, 처음에는 기본으로 하는 정도였죠. 다행히 그때 사귄 친구들이 너무 착해서 잘 끼워주더라고요.
리: 그래서 노오오오오오력으로 영어를 극복하려 했나요.
서: 넵. 뭐 단어 공부, 문법 공부도 열심히 하긴 했지만.. 결국에 언어라는 건 회화잖아요. 그래서 무조건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노력을 했어요. 따돌리지도 않고 말도 잘 못하는 저를 끼워주더라고요. 그래서 친해지면서 말을 배운 거 같아요.
리: 몇 년만에 언어장애 수준을 극복했나요.
서: 어느 정도 말이 통하기까지 2년이 걸린 것 같아요. 근데… 저 솔직히 아직도 영어 100%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영어는 정말 어렵습니다… 이것도 나이가 중요한 게, 이민 갈 때 저는 12살, 제 동생이 10살이었어요 그런데 신기한 게 제 동생은 영어가 더 편해요. 저는 아직도 한국말이 더 편하고…
리: 보면 중학교 정도 가서는 벌써부터 1등하고 그러던데, 독종처럼 하는 편인가요?
서: 그렇지는 않아요. 저 은근 요령형이라 공부도 점수를 어떻게 잘 내는지를 파악하는 버릇이 있어요. 일도 항상 어떻게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결과를 얻을지 생각하고… 노력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그보다 점수 받는 걸 잘하는 학생… 정도?
리: 그건 한국인 종특이죠. ㅋㅋ
서: 아무튼 제가 항상 1등을 원했던 것도, 1등만 했던 것도 아니고요… 그냥 중요한 시험 때만 죽어라고 공부해서 점수 따오는 그런 타입이었어요
리: 책 내용 중 일단 영어가 안 되니 수학 1등부터 하고, 이후 다른 과목 1등을 노렸다… 이런 걸 보면 은근 집착 있는 것 같은데요. ㅋㅋㅋ
서: 아, 그런가요. 어느 정도의 집착은 있었나 보죠. ㅋㅋㅋ
리: 공부 외에 다른 것도 탑을 노리려 노력했나요?
서: 고등학교 때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한국은 슬프게도 공부만 죽어라 해야 하는 분위기인데, 외국은 여러 가지 즐기는 게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운동도, 음악도 사실 엄청 열심히 했습니다. 사실 작곡에 미쳐서 음대 갈 뻔했어요. ㅋㅋ 작곡 대회에서 수상하고 그랬습니다. 밴드 활동하고요.
리: 엄친아 취급 받았겠군요. 이런 사람을 찬 여친이 신기하군요…
서: 그쵸. 저도 신기해요.
리: 지금도 없습니까. (주: 스타트업 시절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고 내뺐음)
서: 있습니다(…)
리: ㅋㅋㅋ
서: ……
리: 엄친아로서 졸업 때 목표가 뭐였습니까? 브랜드 높은 글로벌 기업?
서: 그렇죠. 일단 최고의 직장이었죠. 이름값 있고 돈 많이 주는… 그래도 IT쪽 컨설팅이 하고 싶었어서 IBM에 갔어요.
리: 바로 글로벌 취업을 노려도 되지 않았나요?
서: 그때 뉴질랜드에서 잘나가는 애들은 외국으로 나가던 추세라 저는 여기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고 생각하고 취직을 했는데… 분위기가 영 아닌 거에요. 그래서 그만두려고 했죠.
리: 사표를 썼군요.
서: 아뇨. 금융위기라 일자리가 없어서 일단은 월급 도둑 생활을…
리: ……
서: 한국 말로 누울 곳을 보고 발을 뻗자는 생각으로(…) 구글에 합격한 후 사표를 썼습니다.
3. 그리고 구글에서 도망가다
리: APM 팀은 엘리트 양성코스로 알려졌는데, 처음 구글에 원서를 넣을 때부터 엘리트 팀인 줄 알았나요?
서: 아뇨… 나중에 알고서, 내가 지원할 곳이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붙어버려서…
리: 책 보니 억대 연봉으로 홍보하던데, 얼마 주던가요. (후비적)
서: 그게 홍보문구로 들어가서 좀 커 보이는데, 사실 딱 ‘억대’에 턱걸이 할 정도였어요. 그래도 ‘억’ 소리가 나니 기분은 좋더군요. ㅋㅋ
리: 돈 주는 만큼 일도 개처럼 시키던가요?
서: 아뇨. 그냥 자기가 열심히 하고 싶으면 개같이 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그냥 칼퇴근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리: 본인은 어땠습니까?
서: 저는 처음엔 좀 열심히 하다가, 약간 방향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어요. 구글에 들어가는 게 목표였는데, 그 이상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정말 그때까진 열심히 살았고, 너무 원했던 목표를 달성하니 허무하더라고요.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열심히 일하는 직원은 아니었어요 거의 칼퇴근하고…
리: 억대 연봉 도둑이 됐군요.
서: 지금 생각하니 좀 미안하긴 하네요(…)
리: 구글에서는 뭘 했나요?
서: 처음엔 애드센스(adSense) 팀에서 광고 플랫폼에서 일했고, 그 담에는 블로거(blogger)팀에서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 앱을 만들었어요.
리: 굉장히 기술 기반 느낌인데… 주니어에게 개빡세지 않았나요-_-;;;
서: 정답입니다. 정말 배우고 이해할 게 너무 많아서 정신 없기만 했어요.
리: 구글 직원들과 함께 일해보니 어떻던가요?
서: 최고에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배울 것도 많고… 특히 저희 팀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 많았어요. 엘리트의 모임에도 초엘리트는 있더라고요.
리: 대학 때도 사업 생각이 있었나요?
서: 전공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과 경영이었는데… 그때는 그냥 추상적으로만 “아, 사업하면 좋겠다…” 이 정도였어요. 누구나 그런 상상은 하니까 구체적인 생각은 없었다고 봐야죠
리: 왜죠?
서: 사업할 성격이 못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내성적이고, 안정성을 추구하고… 근데 실리콘밸리에서 2년 살면서 확 바뀐 거죠. 이 동네는 정말 모든 사람이 스타트업에 미쳐있기에…
리: 구글 내부 직원 외에 많이 만나고 다녔나 봐요
서: 특별히 많이 만나고 다니지는 않았는데 구글이든 아니든 이 동네는 다들 스타트업 궁리를 하더라고요. 자연히 창업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뀌었고, 구글에서 친구 하나를 만나서 같이 창업을 결심했어요.
리: 어떤 친구였죠?
서: 저와 같은 APM 프로그램에서 만나서 친해졌어요. 둘이 만나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인생에 대한 불만… 내가 생각했던 인생은 이게 아닌데… 우리는 지금쯤 돈이 더 많아야 하는데… 뭐 이딴 건방진 이야기를 하다가 확 질러버린 거죠. 아이템도 없이, 우리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4. 사업을 시작하자말자 말아먹다
리: 그리고 바로 사표 쓰고 사무실을 차렸나요?
서: 저는 그때 취업비자로 미국에 있어서 사표를 내고 뉴질랜드로 돌아와야 했어요. 그래서 뉴질랜드에서 지내면서 미국을 왔다갔다 했습니다. 한마디로 완전 대책 없이 사표를 낸 거죠. 나중에 알았는데, 스타트업은 비자를 딸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리: 창업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나요?
서: 막 시작한 회사는 돈도 없고 아직 제대로 된 회사도 아니어서… 일단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 생활비를 아끼면서 조용히 살았죠. 다른 지출은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때웠고요.
리: 첫 아이템을 잡기까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나요?
서: 생각 안 해본 분야, 아이템이 없을 정도로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너무 치쳐서 이러다가 사업 시작도 못해보고 끝나겠다… 라고 느끼던 시기에 선생님을 하고 있던 친구가 아이디어를 줬어요. 선생님들을 위한 교재 공유 플랫폼을 하면 대박 난다고.
리: 이제 아이템을 찾았으니 이걸 어찌하면 성공시킬지 기획에 들어갔겠군요. 대략 어떤 석세스 로드를 그렸나요?
서: 선생님을 하는 친구의 학교와 인맥을 동원해서 사용자를 확보하고… 우리는 제품을 만들기만 하고… 어느 정도 사용자가 확보되면 프리미엄 콘텐츠로 돈을 벌고… 대박이 난다! 이렇게 지도는 그렸지요.
리: 이게 한국 시장에서는 뭔가 이해가 안 가는 게, 어차피 교보재는 출판사에서 넘치게 내지 않나요?
서: 한국이 너무 잘 되어 있는 편이죠. 한국은 교과서가 몇 종 없는데, 미국은 그런 게 다 달라요. 주마다 다르고, 학교 시스템마다 다르고… 그래서 학교 선생님들이 물론 교제는 있지만 그걸 자기 수업에 맞게 어느 정도 맞추고 바꿔가며 쓴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사업을 시작했죠.
리: 그리고 폭망.
서: 넵.
리: 폭망의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서: 선생님들이 이런 게 있으면 무조건 쓸 거라는 그 선생님 친구의 말을 무조건 믿은 거죠. 그 가정을 직접 확인해 봐야 했는데, 그냥 믿고 가버린 거에요.
리: 왜죠?
서: 우리는 실패할 수 없으니까… 우리가 하면 무조건 되니까!
리: 미쳤군요(…)
서: 네(…) 건방져서 폭망했어요.
리: 실제 해보니 어떤 문제점이 있던가요?
서: 공유라는 게 콘텐츠를 올리는 사람이 있어야 받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데 올리는 사람은 좀 잘 나가는 훌륭한 선생님이어야 해요. 근데 정작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올릴 이유가 없는 거에요. 힘들게 만든 거 공유해서 뭐 함… 약간 그런 생각에…
리: 하긴 이미 잘 만드는 사람은 잘 팔고 있었겠군요.
서: 네. 그래서 콘텐츠를 원하는 선생님은 많았는데, 올리는 사람이 없었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콘텐츠를 받고자 하는 선생님도, 특히 돈을 내고 받으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리: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군요. 혹시 이 부분, 예로 자금이나 마케팅의 여력이 있었다면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은 없나요?
서: 제가 벌린 일이지만 공유 플랫폼은 힘들 것 같아요.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고 선생님한테 파는 게 아니라 학교 시스템에 파는 장사는 잘 될 거 같지만 그런 회사는 피어슨(Pearson) 등 이미 큰 대기업이 많죠.
리: 실패를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걸렸습니까?
서: 다행히도 빨리 인정했습니다. 한 3~4개월 걸렸네요
리: 출시는 했나요?
서: 출시 이전에 접었어요. 제품이 거의 한 95% 만들어진 상태에서…
리: 헐…
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마케팅이랑 수익 창출이 안 되는 거에요. 그래서 테크스타스에 들어온 김에 확 바꿔 버렸죠.
리: 테크스타스?
서: 미국에서 꽤나 큰 엑셀레이션 프로그램이에요. 회사들 불러 놓고 12주동안 말 그대로 가속을 시키는 거죠.
5. 제품도 보여주지 못한 데모데이로 끝난 테크스타스
리: 그런 프로그램에 시제품도 없이 뽑혔다고요?
서: 네, 다른 팀은 다 있었는데, 저희만 없었어요. 사실 저희 같은 경우는 그 프로그램 역사상 처음이라는 소리도 하더라고요. 그쪽에서도 실험을 한 거죠. 제품이 없는 애들을 데려오면 어떻게 될까…
리: 그리고 그들도 교훈을 얻었군요. 스펙 좋은 대기업 놈들 꺼져. ㅋㅋㅋ
서: 그쵸. ㅋㅋㅋ 무조건 스펙이 좋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라는 걸 모두 함께 사이 좋게 깨달았죠.
리: 다른 팀들은 데모데이에서 어떤 아이템을 내놓아 투자 받던가요.
서: 다양했어요. 패션 쪽부터 시작해서 데이터 기반 IT회사, 운동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녹화해서 폼을 잡아주는 회사, 북 클럽 SNS같은 제품을 개발하던 회사 등등… 그들은 이미 제품이 나온지 최소 2년 정도는 된 회사들이었거든요. 이미 제품이 시장에 나왔고 이미 어느 정도 가능성을 인정받은…
리: 헐. 미국 데모데이는 상당히 빡세네요.
서: 테크스타스가 꽤 커서 그래요. 미국에서는 (그들 주장에 의하면) YC 다음 가는 넘버 2라고.
리: 그래서 어떤 도움을 주던가요?
서: 일단 지분이랑 바꿔서 시드 펀딩을 해줘요. 또 회사에 필요한 서비스 있잖아요. 마케팅, 법률, 서버 등등… 이런걸 무상, 혹은 싸게 해줘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인맥이죠. 사람들을 엄청 소개시켜 줘요.
리: 도움이 좀 되던가요?
서: 펀딩도 좋고 공짜로 받는 것도 다 좋은데, 결국 인맥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다양한 관점에서 의견을 들을 수 있고, 또 그 사람들이 투자자나 개발자 등등 다리를 놔주니깐요.
리: 다른 사람들한테 죽도록 까였겠군요. 저놈들은 뭐이기에 아이디어만 들고 지랄인가…
서: 그렇죠. 간간 성격이 좀 더러운 분들도 계신데, 그런 분들과 세션을 하면 그냥 자아를 내려놓고 들어가서 함께 자신을 까야 해요. 안 그러면 진짜 주먹질 해야 할 분위기라…
리: ㅋㅋㅋ
서: 아무튼 저희는 아이디어가 확실치 않아서 그 분들도 잘 도움을 줄 수 없었을 거에요. 다른 회사들은 그러면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저희는 아이디어 구상을 새로 하기 시작해서 질문을 하는 우리도, 답을 하는 그들도 뭘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결국 우리가 방향을 제대로 잡고 난 뒤에 그들에게 피드백을 받아야 도움이 되던가 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서둘러서 방향을 잡으려고 했죠.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12주라는 데드라인이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아이디어를 내고 방향을 잡기는 어려웠어요. 라빔(Laveem)이라고 회사방향을 ‘건강’으로 잡은 것도 정신 없는 상황에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고요.
리: 라빔은 그냥 아이디어 서둘러 짜내다 나온 건가요?
서: 네. 저희가 어느 날 저녁 먹으면서 “살 뺄까?”라고 농담으로 시작한 말이 시작이었어요. 칼로리 카운터 앱을 찾아보니 맘에 드는 게 없더라고요. 그럼 우리가 해보자… 이렇게 된 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아마 12주라는 부담이 없었으면 안 했을 거에요.
리: 사실 12주면 개발기간으로도 부족해 보이는데요.
서: 네. 근데 뭐라도 만들어서 투자유치를 해야 했기에… 정신 없는 상태에서 붙잡은 아이디어에요.
리: 저는 자영업자이다 보니 투자가 필수인가 고민을 해요. 투자 없이 어찌 매출을 올리며 가보자… 이런 생각은 어땠는지요.
서: 저희도 고민을 많이 했죠. 되도록이면 투자를 안받으려고 했어요. 필수는 아니라해도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는 돈이 있어야 하는 게 현실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다행히 테크스타스에서 받은 시드펀딩이 저희를 먹여 살렸어요. 저와 창업자 친구는 있던 돈으로 버텼고, 다른 멤버는 시드 펀딩에서 조금씩 생활비를 나눠 쓰는 식으로요..
리: 돈이 너무 빠르게 말라가는 느낌인데, 실리콘 밸리에서는 드는 돈도 한국보다 많이 큰가요?
서: 네. 여기 동네가 장난 아니게 비싸요. 그래도 사무실은 테크스타트 사무실을 쓸 수 있었고요. 이후에도 테크스타스 인맥을 통해서 무료로, 아니면 엄청 싸게 사용할 수 있었어요. 또 하나 다행인 게 저는 뉴질랜드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뉴질랜드에 있을 때는 부모님과 있었고 제 공동창업자 친구도 부모님 댁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 돈을 아낄 수 있었죠.
리: 시드펀딩은 얼마를 줬지요?
서: 그때 시드펀딩이랑 들어간 회사에 소액의 돈을 준거랑 합치면 아마 한국 돈으로는 약 1억5천정도 됐을 거에요.
리: 엄청 적네요.
서: 네. 제대로 시드죠. 대신 잘 되면 시리즈 A 투자자 찾아줄게, 이런 식이죠.
리: 그 돈은 몇 달만에 말랐나요?
서: 그 돈으로 2년을 버텼습니다. 월급 받아가는 사람이 셋인데, 기적이죠.
리: 구성이 어떻게 돼 있었지요?
서: 저와 공동창업자는 엔지니어 출신 프로덕트 매니저, 그리고 개발자 하나, 교사가 둘이었죠.
리: 팀웍은 좋았나요?
서: 처음에는 좋았는데, 한 사람이 싸우고 나갔죠. 그리고 변호사 통해서 연락을 취해 왔어요. 교재 프로그램 자기한테 넘기라고.
리: 깽판을 쳤군요. 이런 일을 가지고 굳이 변호사까지… 그때 얻은 교훈은 뭐였나요?
서: 사람은 어느 정도 겪어봐야 한다는 거…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가능한 부분은 무조건 계약서에 포함해야 한다는 거요. 아무튼 사업하며 가장 스펙타클한 일이었죠.
리: 이걸 교훈 삼아 바뀐 일은?
서: 사람을 뽑을 때 조심스러워졌어요. 그 친구도 처음에는 하하호호 웃으면서 시작했는데 그렇게 된 거라 사람은 조금 겪어보고 들여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죠. 이후에는 조금은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채용하게 됐죠. 사무실에서 보지 않고 되도록 캐주얼한 상황에서 사람을 파악하도록 노력했어요.
리: 솔까말 그 서비스 이미 접기로 한 거, 걍 넘겨주거나 혹은 자회사화 해서 일부 지분만 받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유도리가 좀 없었나요?
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친구가 좋게 물어봤으면 그랬을 거에요. 말씀하신대로 지분을 조금 가져가거나, 아니면 어차피 접은 서비스 아예 공짜로 주는 것도 가능했어요. 근데 무슨 이유에서 그랬는지 갑자기 말 한마디 없이 변호사를 통해서 연락을 취하더라고요
리: 그 전에 트러블이 좀 있었나요?
서: 아무래도 그 친구는 좀 만족스럽지 못했겠죠. 이러려고 교사를 그만둔 게 아닌데… 근데 큰 문제는 없었어요. 그냥 갑자기 나 이 일이랑 안 맞는 거 같아…. 이러고 좋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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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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